Skip to content.

조회수 932 추천수 0 휴~ 2015.04.18 14:05:41

: 상한 영혼을 위하여

 

 

w:wrap type="tight">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시인: 고정희, 전남 해남 출생, 한국신학대학 졸

1983 <초혼제>대한민국문학상수상

1991년 지리산 등반도중 실족 사고로 작고

 


시 해설:  상한 영혼을 위한 메시지


임환모

 

고정희 시의 미덕은 상처받은 영혼을 위무하고 그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과 민중적 한을 밑돋움에 깔고 있으면서도, 그 궁극적인 귀결점은 대결과 좌절을 극복한 자리에서 얻어지는 기독교적인 사랑과 희망이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라는 표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이사야 42:3)라는 성경 구절을 인유한 것으로, 이것은 죄악에 빠져 영원히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나타낸다. 여기서 ‘하늘’은 그의 모든 시들이 그렇듯 하나님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래서 ‘상한 갈대’는 모든 소외되고 상처받은 영혼을 지칭하며 ‘하늘’은 그 상한 영혼들을 치유해 주는 하나님의 은총의 장이다.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이 피고,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물은 흐르며 등불이 켜지는데 하물며 뿌리 깊은 갈대라면 밑둥이 잘리어도 새순은 돋아나는 법. 어떠한 고난과 고통에서도 뿌리 깊은 하나님의 구속과 은혜는 영원한 것이기에 살을 맞대고 가는 사랑의 연대 의식은 고통과 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천적 대안인 것이다. 목숨을 걸고 서로 살을 맞대고 가는 연대 투쟁은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시인에게 목숨 걸고 하는 일은 모두 아름답고 거룩하다. 여기서 ‘마주 잡은 손’은 ‘하늘’로 표상되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은혜이기도 하지만 살을 맞대고 가는 연대 의식의 등가물이기도 하다. 고통에게로 가서 충분히 흔들리고 나면 고난이 다할 것이라는 이러한 믿음은 ‘영원한 눈물’이나 ‘영원한 비탄’이란 없다는 인식의 연장선이다.

 우리가 ‘상한 갈대’를 민중이라는 사회학적 논리로만 해석할 때 그 의미 영역은 형편없이 축소되고 만다. 하늘 아래 그 어떤 인간이라도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소유할 수는 없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원죄로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았고 인간은 땀을 흘리며 종신토록 수고하여야만 그 소산을 먹으며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통하여 자식을 낳고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인간은 상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은혜가 그를 믿는 인간들이 살을 맞대고 가는 사랑의 연대 의식과 조우할 때 고통과 설움을 넘어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자 하는 단선적인 것이 아니라 실낙원의 현실에서 고통 당하는 상한 영혼들을 위무하고,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2 [무지개 원리]를 읽고 휴~ 2015-12-02 399
11 말을 위한 기도 [1] 휴~ 2015-06-20 627
» 상한 영혼을 위하여 휴~ 2015-04-18 932
9 신을 위한 변론(The Case of God) - 캐런 암스트롱 휴~ 2015-04-03 915
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1] 휴~ 2015-03-26 1079
7 보내지 못한 카드들을 메만지며... 휴~ 2014-12-28 775
6 눈의 추억 그리고..... 휴~ 2014-12-08 1327
5 이 아침에 휴~ 2014-11-11 1020
4 '인간을 위한 변명'을 읽고 휴~ 2014-11-06 971
3 청바지 휴~ 2014-10-31 1277
2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휴~ 2014-10-31 1033
1 문학이란 나에게 무엇일까.... 휴~ 2014-10-12 1107

  • Group Admin휴~
  • Article13
  • 회원1
  • Created DateAug 15 2014

그룹회원으로 가입하시려면 로그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접속 통계

오늘:
어제:
전체:
18080


BETA
HS Login